오늘의 능력

수치에서 영광으로

키: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냉담하게 본 사람들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겸손함을 기억하게 해요.
단:  ‘Callousness’는 차갑고 무관심한 것을 뜻하고 ‘degradation’은 겸손을 뜻하지요.
비키: 다른 말로 하면,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삶에 아무 가치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에요.
단: 맞아요. 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에 더 관심이 있었어요.
비키: 그래요. 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놓고 제비뽑기를 했지요.
단: 작가가 ‘every shred of dignity has been removed'라고 했어요. 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?
비키: ‘Shred'는 작은 조각을 말하지요.  그러니까 작가가 말하는 것은 거기에는 예수님께 드릴 아무런 존귀함도 없었다는 것이에요.
단:  작가는 가장 나쁜 사람조차도 가식적인 존경 - 즉, 적어도 보이기에는 존경을 표하는 것 같은 것 - 은 받았다고 해요.  
비키: 맞아요.  그 날의 광경은 정말 못 봐줄 것이었지요.
단: 우리가 거기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?  우리도 군인들과 같았을까요?
비키: 작가는 우리가 종교지도자들을 나무랄 수 있었을까 묻고 있어요.
단: 작가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우리자신들이 ‘without the filters that buffer the brutality'를 본다고 해요. 이해가 되세요?
비키: ‘Filter'는 사진기의 특수 렌즈를 말하지요.  이것은 어떤 것을 지워버리거나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기능이 있지요.  그러니까 작가는 십자가 앞에서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아요.
단:  다른 말로 하면, 우리는 지금 인간성의 포악함이나 야만성을 분명히 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.
비키: 그래요. 하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밝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.
단: 맞았어요.  작가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의 부끄러움에서 하나님의 보좌로 옮겨졌지요.
비키: 나는 하나님의 보좌 안에 살고 싶어요.  또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군요.  좋은 하루 되세요.